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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애치슨 라인은 과연 남침유도를 위해 나온 것인가? 괴설을 타파하자!

  들어가기에 앞서 : 이건 전에 지나가는 식으로 다룬 문제인데, 안시성 이 불가촉천민이 자꾸 들이대서 그것도 처리할 겸 아예 새로 씁니다.


  제3주제, 애치슨 라인이다. 블모를 비롯한 남침유도설 주장자들은 애치슨 라인이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데, 글쎄, 과연 그럴까? 일단 블모의 주장부터 살펴보자.


  「잘 알려져 있듯이 '애치슨 라인'은 아시아에서 외부 세력의 침략이 있을 경우, 미국이 방어해주는 범위를 설정해 놓은 선이다. 여기서 한반도와 대만이 제외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서 대한민국이 침략을 받을 경우, 미국은 신경 쓰지 않겠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도록 해놓은 셈이다.

  '애치슨 라인'이 남한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당시 북한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당시 미국은 그런 발언을 뒤집을 만한 발표를 한 적이 없다. 최소한 북한에 경고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희진, 6.25 미스터리, 126p.


  흐음, 글쎄올시다. 과연 그럴까? 블모의 말처럼 애치슨 선언이 정말 한국을 버린다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며, 또 국제사회도 그렇게 해석했을까? 그럴 리 없지.


  「(전략)...기타 태평양지역의 군사적 안전보장에 대해서 말하자면 누구라 할지라도 이 지역을 군사적 공격으로부터 보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와 같은 보증은 실제적인 면에서는 거의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명확히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공격이 있을 경우, 첫째로 의지해야 할 것은 공격을 받은 국민의 저항이며, 다음으로 의지해야 할 것은 전문명세계가 유엔 헌장 아래서 맺은 약속이다. 유엔 헌장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해 자기의 독립을 굳게 지키려는 결의를 굳게 하고 있는 국민에게는 무력한 신조가 아님을 보여 왔다...(하략)」- 딘 애치슨, 아시아에서의 위기(Crisis in Asia), 6.25 전쟁사 ① : 전쟁의 발발과 원인 730p에서 발췌.

「애치슨 선언은 한국과 대만이 미국의 방위선 밖에 놓여 있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이 공격을 받을 경우 최초의 저항은 당사국 국민이 부담하고, 차후에는 유엔헌장에 의거하여 전 세계가 개입할 것이라는 연설 내용처럼 이 두 지역이 전적으로 무시된 것은 아니었다...(중략) 이 의문은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 16개국이 한국을 적극 지원하게 됨으로써 풀리게 되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 전쟁사 ① : 전쟁의 발발과 원인, 111p.


  이런 애치슨 선언인데 잘도 버린다는 선언이겠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반응은 어땠을까?


  「우선 <로동신문>은 남한이 애치슨의 방위선 내에 들어간 것으로 보았다. "애치슨의 의견에 의하면 곧 예속국인 일본 비률빈 남조선인 바" 미국은 이러한 나라들에 대하여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분석, 보도하였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로동신문>의 논조는 이 연설에 남한이 포함되어 있느냐 않느냐에 있지 않았고, 그것이 갖는 대아시아, 대남한 침략성을 지속적으로 비난하는 데 초점이 놓여 있었다. 다른 신문과 잡지들의 글들도 동일하였다. 즉 북한의 일반적인 인식은 이것으로 인하여 미국의 정책이 바뀐 것으로 보지 않았다.」-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 557p.

  * <로동신문> 1950년 1월 26일, "애치슨은 아무것도 연구하지 않았다"

  「(전략)...이승만과 남한은 반발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감사의 표시를 애치슨에게 보냈다. 이 연설이 발표되고 나서 이승만은 다음날인 13일에 즉각 다음과 같은 전문을 주미대사 장면을 통하여 애치슨에게 보냈다.

  『한국에 대한 귀관의 성명에 심심한 감사를 보냅니다. (우리는 지금)* 돌을 파서 뒤집어버리려는 외국의 사주에 대하여 온갖 수단으로 파괴를 일삼는 도배에 대하여 철저히 그 세력을 분쇄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귀관의 성명은 실지회복 반공투쟁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한국국민을 고무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략) 이 전문이 말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실제로 인식하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보다도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공표하여 내부의 민중과 북한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소련과 미국에 인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게재되어 있었다...(중략) 한국의 신문들의 논조 역시 동일하였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애치슨 연설이 "이것은 미국이 한국에 대하여 직접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언한 것"이라면서 "우리를 고무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 558~559p.

  * 괄호는 저자가 넣은 것이다.
  * <서울신문> 1950년 1월 15일.


  위의 두가지 예, 즉 북한과 남한의 모두가 애치슨 라인을 두고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애치슨 개인적으로도 트루먼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의회의 대한원조법안 부결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을 보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대해 다만 방어만을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의 계속적인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 군사적, 기술적인, 그리고 다른 지원들을 약속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제한된 지원이 계속된다면 공화국(남한 - 인용자)은 계속 생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추가적인 지원이 거부된다면 그 기회는 상실될 것이고 아마도 우리의 모든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우리가 의회의 이 결정을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미국외교정책의 한 재앙이 될 것입니다.』*

  1월 12일의 연설이 방어를 포기한 것이라면, 또는 그러한 의사를 조금이라도 내포하였던 것이라면 이러한 서한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원인 II, 563p.

  * Dean Acheson, Strengthening : The forces of Freedom - Selected Speeches and Statements of Secretary of States Acheson, Feb. 1949 ~ Apr. 1950 (Washington, D. C : U. S. G. P. O. , 1950), pp. 174~175.


  그러나 여기서 '애치슨만 그랬고 미국은 유도하려고 했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기에 미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물론 미국의 태도에서도 '유도'하기 위함으로 보이는 행동은 없지만.


  「1월 19일에 하원에서 대한원조법안이 부결되자 1월 20일 장면 대사가 애치슨을 직접 만나려고 하였다. 이것은 애치슨을 직접 만나 의사를 확인해보라는 이승만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애치슨의 의회 출석 관계로 그를 만나지 못하자 장면은 미국무성 동북아시아담당 차관보 버터워스(W. W. Butterworth)를 만났다. 버터워스를 만나서 장면을 전날 대한원조법안이 하원에서 한국에 유리하게 처리되지 못한 데 대해 한국의 우려를 전달하고, "한국이 미국의 태평양방위경계선에서 제외되고 또 전날 하원에서 대한원조 잔액분이 부결된 조치가 겹쳐 미국은 이제 과연 한국을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 하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버터워스는 "그와 같은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한국의 위치는 어떠한 방향으로 방위선이 구획되더라도 그 선에 의한 이익의 정의를 초월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곧 애치슨의 인식 및 전술과 동일한 것이었다.」-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 564p.

  「1월 26일에는 남한정부와 미국정부는 비공산국가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위해 1949년에 제정된 미국의 <상호방위원조법>(Mutual Defence Assistance Act)에 의거하여, 남한에 대한 미국의 방위원조를 명문화한 <대한민국정부와 미합중국정부 간의 상호방위원조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은 내용의 온건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1월 12일의 '연설'보다는 더 항구적이고 법제화된 관계의 제정이자 지원규정이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는 한켠에 작게 끼워진 1월 12일의 연설보다 결코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1월 29일 애치슨은 "대한원조의 계속을 확신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이승만에게 발송하였다.* 결국 2월 9일에는 미국하원에서 대한원조법안이 가결되었고 2월 10일에는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였다. 이에 대한 한국에서의 반응은 1월 12일의 연설에 대한 반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남한은 환호하였고 북한은 더욱 비난의 논조를 강화하였다.」-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 565p.

  * 한국 외무부, <大韓民國外交年表 - 附 主要文獻, 1948~1961>, pp. 168~170.
  * 한국 외무부, <大韓民國外交年表 - 附 主要文獻, 1948~1961>, p. 12.


  위의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 전체가 한국을 포기하지 않고 나름대로 꾸준히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더 나아가 이러한 조치들로 볼 때 남침을 유도했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음이 드러난다. 실제로 박명림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애치슨 라인은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비판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승만이, 북한을 고의적으로 유도하려는 애치슨의 의도를 알고, 또 자신도 유도하려고 미리 감사를 표시했다는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최악의 이중 악마적 논리로서나 가능한 상상일 것이다.」-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 567p.


  이번 주제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뒷이야기를 신나게 해야 겠지만 귀찮으니까 생략할래요. 뭐 이래봐야 블모는 '안 보여, 안 들려'를 반복할테니까.

  P.S. 예전에 블모한테 '이거 뭔데 주석이 3개 밖에 없음?'이라고 했더니 블모가 '전공서와 대중서의 구분도 못하는 병X'이란 말을 했었죠. 하, 그러면 「콜디스트 윈터」는 뭔데 주석이 천개가 넘어갈까나? 그리고 말이지 블모, 보통 그런 전문서적들은 근거가 되는 1차 사료들이 주석으로 달려있거든? 멍청한 건 내가 아니고 그쪽이지. 자, 1차 사료 깠으니까 그쪽도 사료 내놓으시지?

  P.S. II. 아, 그러고 보니까 계속 8월의 폭풍만 물고 늘어지고 대전차무기에 대해서 포스팅한 건 거들떠보지도 않더라? 그거도 한 번 뭐라 해보시지?

  P.S. III. 하여간 당신은 말 돌리기 甲임. 원래 주제가 당신이 주장하는 남침유도설이 왜 잘못되었으며 그 근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낱낱이 파헤치는 거였는데 은근슬쩍 8월의 폭풍으로 주제를 돌려버리고 말이지. 그래서, 왜 한참 전에 올렸던 대전차무기를 왜 안줬는가에 대한 건 반응도 안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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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3/04/30 12:4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30 19: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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